연구원 연구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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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열 (HK교수/ 연구분야 : 서양사)

논문논문초록
12~13세기 해항도시 베네치아의 역사적 형성 -해항도시의 역사적 개념화를 위해(해항도시문화교섭학, 2009. 10. )
본 논문은 그 시초부터 12~13세기까지 베네치아의 정치적․상업적 발전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특히 베네치아가 가진 초지역적 무역망과의 연계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베네치아가 해항도시로서 성립되는 역사적 과정을 검토해 보고자 하였다. 처음부터 바다 위에 건설된 베네치아는 주변 육지 지역과의 교역에 기초하여 살아가야 했다. 서기 1000년 경,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의 해적을 소탕하면서 바다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기 베네치아의 무역과 네트워크의 내용과 규모는 국지적이고 한정된 것이었다. 12세기 무렵 베네치아는 자신의 정치 구조를 정비하고 코뮌으로서 공화국 체제를 취했다. 베네치아는 그 이후 베네치아는 분명한 법 제도와 콜레간자와 같은 재정 및 경제 체제를 지니게 되었다. 게다가 베네치아는 1082년 비잔틴 제국 황제로부터 받은 금인칙서와 1204년 콘스탄티노플의 정복을 통해 동지중해로의 진출을 계속하였다. 그 이후 베네치아는 동지중해의 패자가 되었고 레반트 지역을 인도제도와 연결시켰던 아프로-유라시아 무역 네트워크에 연결되었다. 따라서 베네치아는 그때 비로소 초지역적 네트워크의 한 고리로서의 성격을 완전히 갖추게 되었다. 이것은 베네치아가 13세기 이래 해항도시로서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다 위에 도시를 건설하다 - 12~13세기 해상도시 베네치아의 성립(코기토, 2010. 08)
베네치아는 바다에 면해 건설되었고 상업 네트워크의 결절점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해항도시이다. 그러므로 그 시대 베네치아의 도시 조직과 주거 형태를 조명하는 것은 해항도시의 도시적 성격을 이해하는 큰 기여를 할 것이다. 12․13세기 베네치아의 도시 조직과 주거 형태를 검토해서 얻은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아랍의 이슬람 도시와 비견될 정도의 복잡하고 유기적인 도시 공간구조, 2. 도시 형성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교구 공동체에 기반한 다핵적 도시 조직, 3. 운하와 다리, 가로를 통해 도시 전체를 통합하여 이루어진 중심성, 4. 주택 구성과 형태에서 알 수 있는 개방성과 폐쇄성, 5. 모든 주거 형태에서 볼 수 있는 삼열 내지 이열 공간구조, 6. 블록형 주택에서 L자형 주택으로의 발전.
특히 이런 특징들 전부가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 두 세기 동안에 두드러지게 등장했고 이것이 베네치아의 정치적, 행정적, 경제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 하에 일어났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상업 네트워크의 결절점과 함께 도시 조직과 주거 형태 측면에서도 베네치아는 전형적인 해항도시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한 여성의 삶을 통해 본 여성과 혁명: 러시아인 ‘여성 코뮈나르’ 엘자베트 드미트리에프(여성과 역사, 2010. 12)
1871년 파리 코뮌의 여성 활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존재는 ‘파리의 방어와 부상자 간호를 위한 여성 동맹’이었다. 이 ‘여성 동맹’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파리 코뮌의 역사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사람에 속하는 이가 엘리자베트 드미트리에프(Elisabeth Dmitrieff)이다. 드미트리에프는 러시아 여성으로 인터내셔널에서 파견한 이로 주목 받았지만, 코뮌이 끝난 후에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런 한 여성의 변화과정은 수많은 정체성을 내포하고 교직하며 전개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과정이며 이런 여성 개인의 삶은 실제로 존재하는 여성들의 (집단으로서가 아닌) 삶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세기 유럽 상황에서 이주하는 여성의 삶이 역사적 현실 속에서 어떤 문화접촉을 겪고 변화해 갔는지를 살펴보았다.

1871년 마르세유 코뮌 연구: 코뮌적 자치와 국가권력의 충돌(역사와 경계, 2011. 03)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해항도시 마르세유에서 발생한 국가권력과의 충돌양상이었던 마르세유 코뮌을 미시적으로 살펴본다. 1871년 3월 22일 파리보다 며칠 늦게 발생하여 10여일 정도 존속하였던 마르세유 코뮌은 이러한 시각이 옳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마르세유 코뮌은 파리의 상황에 따라갔다기보다는 전국적인 정치 상황의 전개과정에 스스로 맞추어 가며 상황에 따라 자신의 요구를 바꾸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870-1871년에 마르세유에서 전개된 코뮌적 상황은 국민국가의 통일적인 중앙집중화 경향에 맞서는 내재적인 분권적 성향을 지닌 한 해항도시가 전체 국가적 차원의 상황에 따라 자신의 성향을 감추기도 하고 전면에 드러내기도 하면서 국가의 중앙 권력에 대응해 나갔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항구도시 마르세유의 인터파: 사회구성과 활동(역사와 세계, 2011. 06)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제국적 확장에 힘입어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고 있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활동한 인터파들의 사회 구성과 활동상을 살펴보았다. 직업면에서 마르세유 인터파들이 가진 특징은 이런 산업화와 도시 개발 과정과 연관된 직업의 비중이 압도적이며, 그에 더해 항구도시로서 상업 및 항구와 관련된 직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즉 직업면에서 볼 때 마르세유 인터파들은 항구도시에서 활동하는 인터파로서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인터파 속에 항만노동자나 선원이 가입되어 있는 것은 다른 지역의 인터파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이며, 게다가 이들이 집단적인 가입이나 행동을 하였음을 보면 마르세유 인터파가 가진 주요 특징 중 하나를 이런 직업군의 인터파의 존재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 1867년 섹션 설립 이후 마르세유 인터파의 활동상에 대한 검토는 항구도시로서 마르세유가 지닌 특징들을 그다지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만 조직 활동에서 항만관련 직업이나 선원,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활동이 이와 관련하여 주목된다.

비교적 전망에서 본 식민지도시의 역사적 전개와 공간적 특징(석당논총, 2011. 07)
19세기 이전 중상주의 시기의 ‘상업적’ 식민주의 시기에는 주로 연안지역에 거점 형식의 도시를 통해 식민지도시가 전개된 반면, 19세기의 산업자본주의 시기의 ‘산업적’ 식민주의 시기에는 식민지도시가 보다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특히 원료가공공업을 필두로 한 산업도시화와 화물집산지로서의 성격 강화가 주요한 특징으로 나타났다. 한편 19세기 이후 식민지도시의 공간적 측면에서 이중도시론으로 표현되는 종족이나 계급에 따른 공간적 격리(segregation) 현상 역시 이전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식민지도시의 일반적 특징과 관련해서는 선행연구에서 정리한 30가지 특징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아 좀 더 비교적이고 구체적인 측면에서 검토해야 할 점이 많음을 밝혔다. 특히 공간적 격리와 관계된 이중도시론이 가지는 지나친 추상성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실제 모습의 기각 부분을 도시 간 비교를 통해 드러냈고 이런 문제를 넘어서기 위한 좀 더 비교적인 측면에서의 식민지도시 연구의 필요성을 밝혔다. 특히 식민지도시가 주로 해항도시임에 주목하여 식민지 해항도시 연구를 위한 기초를 놓았다.

19세기 마르세유 항만의 기능변화와 도시공간구조(대구사학, 2011. 05)
19세기 마르세유는 프랑스 제국주의의 대표 항구로서 식민지에서 공급되는 원료에 기반한 산업화와 그를 위한 항만 기능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나아가 이런 경제적·기능적 변화에 조응하여 급격한 도시화 과정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마르세유가 보여준 도시공간구조 및 항만 기능의 변화 그리고 주거지역에서 일어난 변화들은 원료공급지이자 시장으로서 다수의 식민지를 확보한 식민지 제국의 해항도시가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발전 유형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이런 마르세유의 사례를 근거로 다른 식민지제국의 해항도시들과 비교하고, 또한 나아가 식민지의 해항도시들에 대한 사례 연구를 통해 드러난 사실들과 비교한다면, 근대 시기, 특히 제국주의 시기 해항도시들의 발전과정에 대한 유형학적 설명들을 도출해 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브로델의 지중해와 '해역세계'(역사와 세계, 2012. 12)
페르낭 브로델은 프랑스 아날학파를 대표하는 위대한 역사가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지중해와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에서 지중해를 역사 세계로서 다루었다. 그의 지중해 개념을 검토하여 바다로부터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 수행되는 연구의 '해역세계' 개념을 구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브로델은 지중해는 단 하나의 의미만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지중해는 물리적/지리적, 역사적 차원의 것이었다. 이런 차원들은 중첩되지만 서로 달랐다. 지중해를 정의하면서 브로델은 지리와 환경을 중요시했고, 이에 책의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그가 볼 때 역사적 지중해는 "지리적 분업"의 매개하여 여결된 "하나의 세계경제, 하나의 자기충족적 세계"였다.
오늘날 많은 역사가들이 '해역세계" 개념을 사용해왔다. 그들 모두는 자신의 '해역세계' 개념이 브로델의 지중해로부터 얻은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그것들 내부엔 다소간 차이가 있다. 일부 역사가들은 브로델처럼 지리와 환경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지리와 환경을 염두에 두더라도 일정한 해양 권역들을 포괄하는 네트워크에 강조를 둔다. 문제는 이 둘 중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다. 각자가 장단점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관된 '해역세계' 개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그 내용이다. '해역세계'라는 말을 쓰려면, 일정한 해양 권역들을 해역세계로 만들 수 있는 주된 테마들(디아스포라 네트워크, 생태학적 교석 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해항도시개념과 해항도시 문화교섭학 연구의 방향성: 아젠다 수행을 위한 제언(해항도시의 문화교섭학 2012.04)
해항도시 문화교섭학 연구는 현재 새로운 학문 분야로 나아가기 위한 교차로에 서있다. 이 글은 이와 관련하여 해항도시 개념을 정초하고 연구인력들의 연구성과들을 분석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해항도시는 바다에 면한 항구를 지닌 항구도시이다. 그래서 그것은 육역과 해역을 연결하는 결절점으로 기능한다. 이것은 그것이 네트워크 속에 위치하며 그것들을 연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항구와 네트워크가 해항도시에서 부각된다. 따라서 해항도시 연구는 항구와 네트워크, 도시라는 세 가지 준거점에 근거해야 한다. 이런 준거점에 기초하여 1단계 연구인력들의 연구성과를 분류하고 분석해 보면, 연구성과의 60 퍼센트 이상이 그 준거점들에 부합함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약 30 퍼센트는 그런 준거점에 전혀 적합치 않았음도 드러난다. 이런 논문들은 해항도시 문화교섭학 연구라 부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2단계에서 연구팀의 목적은 해항도시 문화교섭학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보다 세심한 해항도시 개념과 아젠다에 기초한 하위 계획들을 마련해야 한다. 그에 더해 연구인력의 연구성과 각각이 세 가지 준거점에 부합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연구인력 각각은 세 가지 준거점에 합치되는 연구성과를 생산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붉은 성녀' 루이즈 미쉘의 식민지 경험: 누벨 칼레도니에서의 이문화접촉 과정과 그 영향 (서양사론, 2013.09)
루이즈 미쉘은 대표적인 여성 코뮈나르였다. 그 때문에 그녀는 요새 유형형에 처해져 1873년 누벨 칼레도니로 이송되었다. 1880년 파리로 귀환할 때 그녀에게는 '붉은 성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누벨 칼레도니에 있던 1873년에서 1880년 사이에 그녀에게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누벨 칼레도니의 자연과 카나크인 그리고 그곳의 토착 문화가 그녀가 원래 가진 로맨틱하고 원시적인 기질을 충족시켰다. 이런 기질의 강화는 근대문명이 파괴하던 근대 이전의 구술문화와 관습에 대한 그녀의 몰두로 이어졌다. 누벨 칼레도니는 그녀가 파리 코뮌에서 확인했던 피억압자의 언어와 문화의 해방을 다시 보여주었다. 이런 경험은 루이즈 미쉘이 아나키즘을 채택하는 데도 일조했던 것 같다.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본 16세기 해항도시 르아브르의 건설: 근대 도시계획의 기원 (역사와경계, 2014. 3)
16세기 초 센 강 하루 바다에 맞닿는 거리에 건설된 해항도시 르아브르는 군항을 주 기능으로 하고 상업항으로서의 기능을 부차적으로 가지면서 조성되었다. 하지만 16세기 중반까지 이탈리아 건축가를 동원하면서 진행된 르아브르의 건설과정은 처음부터 체계적인 계획 하에 근대적인 가로 조성과 기반시설 설치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르아브르의 건설과정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들, 즉 직선가로체계를 통한 격자형 구획 정리, 가로를 향한 파사드의 정렬과 주택 건설계획을 통한 가로경관의 정비, (비록 미원성이지만) 주택과 거리를 연결하고 거리와 항구를 연결하는 지하배관의 설비를 통한 하수도 체계의 정비 등은 르아브르의 도시 건설이 근대 도시계획의 원형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르아브르 도시 건설의 근대적 성격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것은 그 도시의 건설이 처음부터 당시 출현하던 국가의 이해관계, 즉 공익에 기초하여 계획되었고 건설과정에서도 지역 영주의 봉건적 권리주장의 간섭에 맞서 군주의 일관된 의지 하에 추진되었다는 점이었다. 르아브르는 당시의 시대적 맥락과 건설의 구체적 시행과정 자체에서 적어도 프랑스에서 근대적 도시계획의 기원을 보여주고 있다.

17-18세기 해항도시 르아브르의 기능과 도시공간 변화 (역사와세계, 2014. 6)
This article aims to take a look at the change process of functions of port and city in Le Havre during the 17th and 18th centuries, and understand its urban spatial changes in accordance to their process making use of its contemporary maps and other sources.
Le Havre can be considered as an earliest example of modern urban planning in that it had been founded under the basic intention of a fortification city and represented the ‘Ideal City’ plan of 16th Century Europe. But French absolutism gave priority to its military port function, and so its port function and spatial utilizations were entirely subordinate to the military goals. However its military function already began to decline in the late 17th century, when Brest was constructed as a new military port and Dunkerque appeared as the center of French North Sea policy. As entering 18th century, Le Havre became functioned as an important entrepôt in Atlantic coast of France.
Nevertheless, its urban structure did not correspond with the commercial port function and its active traffics. Throughout two centuries, its urban spatial structure of 16th century remained intact. Above all, Grande Cirque, the basin du Roi controlled by Navy, entirely cut the quartier Notre Dame off the quartier Saint-François. In other words, it separated the administration centre from the commercial centre. In Le Havre, thus, CBD could not be formed and its urban strucuture failed to support the international commere and trade.
To solve these problems, the Lamandé plan was adopted in the late 18th century, and the great renovation works of Le Havre had been carried through from then to 1832. When the works finished, its old ramparts and bastions had been destroyed and its port facilities had been expanded greatly. After all, the spatial expansions of Le Havre linked the administration centre with the commercial centre.

바다에서보는 역사와 8-13세기 해양권역의 형성(역사와경계, 2015. 9)
현재 세계사 연구 경향 중 하나인 바다에서 보는 역사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그 역사방법론적 의미를 그려본다. 나아가 바다에서 보는 역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살펴보면서 역사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연구 및 분석다누이로서 해양권역을 상정한다.

16-17세기 세계 은 흐름의 역사적의미(해항도시문화교섭학 2015. 10)
16-17세기 세계 은 흐름의 현황과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은의 동쪽으로의 이동에 대한 해석과 동쪽에서 은을 주로 받아들인 중국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6-17세기 세계경제의 등장과 그 성격:이론적접근(역사와 세계, 2015. 12)
16-17세기 세계 은교역의 전개와 연계하여 세계경제가 등장하는 양상을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그렇게 등장한 세계경제의 성격에 통합성과 연결성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접근해보았다.

제국 테크노크라트의 도시사상:오사카 시장 세키하지메의 도시및도시계획관(동북아문화연구, 2015. 12)
본 논문은 제국 시기 일본의 대표적인 해항도시이자 근대도시였던 오사카의 도시계획을 주도한 당시 오사카 시장 세키 하지메의 도시관 및 도시계획론을 통해 제국 체제 속에서 작동한 제국 테크노크라트의 도시시상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즉 일본 근대도시 형성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들이 여러 해항도시에서 관철되는 근대도시계획의 입안 및 실행과정에 있음을 감안하면서, 그런 도시계획의 실재 입안 및 실행자가 보는 도시관 및 도시계획관을 당시 세키 하지메의 여러 텍스트들을 직접 활용해 밝히고자 하였다. 세키 하지메는 명치시기 몰락한 막부 신하 집안 출신으로 도쿄고등상업학교를 통해 제국으로 성장하는 일본의 테크노크라트로서 양성되었다. 세키 하지메의 사상 전체를 보면, 분명 그가 유학시절에 습득한 얼마간 급진적인 자유주의 사상의 요소도 보이고 그런 요소들이 그의 도시정책이나 사회정책 등에서 강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도시와 도시계획을 중심으로 본 세키 하지메는 기본적으로 제국일본의 “부국강병”을 위해 작동하는 제국테크노크라트로서 나타나며, 그의 도시관과 도시계획관 역시 그런 점에서 국가경제 중심적이며 실용적 측면에 치우쳐 있다는 평가를 내리게 한다. 세키 하지메는 바로 “문제꺼리로서의” 도시를 “근대적 삶으로서의 도시”로 변모시켜서 일본 제국의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제국테크노크라트였던 것이다.

저서 및 번역서내용보기
바다와 인간(선인, 2010.8)
국제해양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바다와 인간 중 서양의 해적 부분을 맡아 인간이 바다와 맺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성의 한부분을 살펴보고, 그것이 후대인에게 가지는 이미지 작용을 보여주었다.

해항도시의 역사적 형성과 문화교섭(선인, 2010. 8)
국제해양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해항도시의 역사적 형성과 문화교섭에서 12, 13세기 베네치아의 사례를 중심으로 지중해 세계에서 한 해항도시가 형성되는 과정과 그를 매개로 전개된 교섭적 양상을 살펴보아 해항도시가 가지는 역사적 기능에 대해 천착하였다.

17-18세기 아시아 해항도시의 문화교섭(선인, 2012. 12)
일본의 세계사 연구자 하네다 마사시가 주도하여 일본, 중국, 네덜란드 등의 학자들이 글을 모은 이 책은 아시아 거의 전역의 바다와 주요 해항도시를 아우르면서도 일관되게 관철되는 비교사적 원칙을 세우고 서술의 기본방향을 명확히 함으로써 아시아의 바다 전역에 대해 일정한 그림을 품을 수 있게 한다.

해항도시문화교섭 연구방법론(선인, 2014. 1)
해항도시문화교섭 연구의 기본 틀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된 연구소 공동작업의 결과물로 이중 해항도시 개념과 역사적 전개에 대한 기본 얼개를 제시하는 2장의 내용을 저술하였다.

기타내용보기
제5회 세계해양문화연구소협의회(WCMCI) 국제학술대회(2015. 4)
일시: 2015. 4.24-25  /  장소: 대만 중앙연구원(Academia Sinica)
발표주제: A History seen from the Sea and the Sea-Port City: the Maritime Network and the Sea Area at the Studies of Cultural Interactions of Sea-Port City

2015년도 한국아시아학회국제지역연구학회 공동학술대회(2015. 12)
일시: 2015. 12. 11  /  장소: 부산외국어대학교 트리니티홀
발표주제: 16-18세기 세계 은 교역과 세계경제의 형성

2016년도국제해양문제연구소인문한국국내학술대회(2016.1)
일시: 2016. 1. 29  /  장소: 한국해양대학교 평생교육관
발표주제: 제국일본 도시계획가들의 도시사상

제12회해항도시국제심포지움
일시: 2016. 2.20-21  /  장소: 일본 나가사키대학
주제: Theory of the 16th Century Globalization Birth: A Critical Assessment

제7회 세계해양문화연구소협의회(WCMCI) 국제학술대회(2017.05.19-20)
일시: 2017.05.19-20  /  장소: 중국 상하이사회과학원 분부
발표제목: Theory of Japanese Industrialization in the Global Economic History: A Critical Assess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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