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연구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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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선 (HK연구교수/ 연구분야 : 사회사, 사회학)

논문
논문초록
근대도시 청도(靑島)의 건설과 주민의 생활
(동북아문화연구, 2013.9)
본 연구는 독일과 일본이 청도를 점령한 1897-1922년을 중심으로 신흥도시 청도가 형성되는 과정 중에 주민의 거주구역이 어떻게 규정되고 그곳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분석했다.
독일 점령기의 청도는 위생상의 필요라는 명분하에 인종·국적에 따라 유럽인 구역과 중국인 구역으로 분리되어 건설되었고, 더불어 근교에 도시건설부지 내에 살던 원주민 및 중국인 노동자의 거주 구역이 따로 만들어지면서 계급계층에 근거한 거주지의 분리가 이루어졌다. 청조의 붕괴 후, 독일 당국은 막강한 자본력을 지닌 청조의 대관 및 거상들을 유치하기 위하여 그들을 대상으로 유럽인 구역에 대한 규제를 완화 시키면서, 총독부 참사회 내에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1914년 청도를 점령한 일본은 도시를 정비하고 확장하는 과정 중에 독일과 같이 규정된 거주구역 분리는 실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급증하는 일본인의 주거지를 확보하고 일본의 민간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과 조치들을
취하면서, 기존 청도 중국인과 독일인의 재산과 생활을 침해했다. 사회 질서의 회복에 따라 중심지의 지가와 물가가 상승하고 이 구역에 대한 당국의 엄격한 관리가 이루어지면서 근교의 중국인 노동자 밀집구역에서 중국인과
일본인의 잡거가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도시 형성기 청도 주민의 거주지와 생활은 인종·국적, 계급계층이라는 통치 세력과 주민 간의 관계의 현현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일본 점령기 청도(靑島)의 산업과 노동자 연구
(역사와 경계, 2013.12)
본 연구는 독일과 일본점령기 청도의 산업구조와 노동자 구성을 분석함으로써 청도의 산업 및 노동자 계층의
형성 과정을 밝히는 동시에 도시(청도)와 배후지(산동성)관계의 일면을 고찰하고자 한다.
청도의 산업구조와 주민의 직업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당시 청도의 산업은 청도 근교를 중심으로 농어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도시부에서는 상공업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독일과 일본 점령기는 도시의 형성기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도시 및 산업 인프라 건설과 정비와 관련된 토목건축 활동이 활발했고, 관련 종사자도 크게 증가했다. 상업과 무역은 청도 산업발전의 근간으로 항만, 철도의 준공, 개통과 함께 급성장했다. 일본 점령기에 들어서는 일본 자본과 중국 민족자본의 대규모 투자로 인해 근대 제조공업의 기반이 마련되었고, 관련 노동자의 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독일과 일본 점령기 청도 상공업 발전의 원동력은 기반시설, 자본과 함께 산동성 농촌 지역에서 공급되는 노동력이었다. 신도시의 형성과 도시 내 노동력 수요는 전통 사회경제구조의 해체로 인해 새로운 생계수단을 모색하던 산동성 농민을 흡인했다. 이 시기 청도 산업 노동자는 부문을 막론하고 산동성 출신자의 비중이 높았고, 업종에 따라서 산동성 출신 파두(把頭)를 매개로 노동자를 모집·관리하는 방식을 채용했으며, 인구구조 및 산동성의 전통 관습·관념의 영향으로 남성 노동자의 비율이 높아 일반적으로 여공의 비율이 높은 방적업에서도 남성 노동자가 대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청도 초기 산업노동자의 이와 같은 점은 노동자의 주요 내원인 산동성 사회가 가진 특징에서 기인하는 바가 컸다.
청도의 초기 산업구조와 노동자 구성은 신흥도시로서 노동력의 많은 부분을 산동성 농촌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청도 산업계의 상황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청도와 배후지 산동성의 관계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근대 해항도시의 객잔(客棧)과 산동인의 동북이동
(해항도시문화교섭학 10, 2014.04)
본고는 19세기 후반에서 중일전쟁 발발 전까지 산동반도 해항도시의 객잔과 산동인 이동과의 관계를 고찰했다.
산동인의 주요 송출항인 산동반도의 연대, 용구, 청도의 객잔은 동북지방으로 이동하는 산동인의 중계기관이자 연락기관으로 기능했다. 지역과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던 산동인의 이동 양상과 성격은 객잔의 경영 방식 및 영업 상황에도 반영되었다.
일찍부터 주민의 이동이 시작된 산동반도 북부의 객잔은 동향 관계를 바탕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용객을 안정적으로 확보했고, 주기적이고 안정적인 주민 이동의 양상은 이러한 경영 방식의 유지를 가능하게 했다.
그와 비교하여 청도의 객잔은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이동 양상을 보이던 산동성 내륙부의 주민이 주로 이용하면서 안정적인 고객의 확보가 어려웠고, 따라서 산동성 각지에 분점을 내거나 점원을 파견하여 이용객을 모집하는 경영 방식을 취했다.
연대와 용구의 객잔이 동향관계를 바탕으로 경영되는 경향이 강했다면 청도의 객잔은 그와 같은 성격은 약한 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연관계가 가장 옅었다고 보이는 점원을 이용한 이용객 모집 역시 결국 점원의 고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지연 관계가 당시 산동인 이동의 근저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중국 화북 한족의 ‘만주(滿洲)’ 이동과
동북지방 노동자 구성:
1930년대 전반 대련(大連) 및 그 배후지를 중심으로
(中國學, 2014.4)
본 논문은 1930년대 전반 중국 화북지방(華北地方) 한족(漢族)의 동북지방(東北地方)으로의 이동이 대련(大連) 및 그 배후지의 노동자 구성과 노동관리에 미친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근대 해항도시 대련의 사회구조적 특징의 일면을 고찰하고자 했다.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전반에 걸쳐 동북지방으로 유입된 역외인구는 매년
40만~100만 명에 달했다. 이들 유입인구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던 화북 출신 한족들은 주로 산동성 농촌에서
산동반도와 요동반도의 해항도시를 거쳐 동북지방 각지로 유입되었고, 그 과정에서 대련은 이동의 주요 출입구이자 노동력 흡수지로 기능했다. 이 시기 동북지방으로 이동한 한족 중에는 영주 이민을 목적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단기 노동을 목적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련 및 배후지의 노동자 구성은 이러한 화북
한족의 유입 양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전체 산업노동자의 과반을 화북 한족이 차지하는 가운데, 특히 대규모 노동력을 요하던 탄광, 부두에서는 화북지방 등 역외지역에서 필요노동력의 많은 부분을 흡수해야 했던 만큼 노동자 수급조절에 고심하고 있었다. 이 시기 파두제가 중심이 되었던 노동자 조직과 화북지방 혹은 그 지연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노동자 모집은 화북 한족이 이 지역 산업계에서 가지는 중요성과 함께, 노동력 공급지로서 화북지방과 노동력 수요지로서 동북지방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칭다오 일본인사회의 접촉과 갈등에 관한 통시적 연구
(코기토, 2014.08)
이 연구는 중국 칭다오 일본인사회를 사례로, 동북아시아 초국적 관계의 결절에 위치한 해항도시의 접촉과 갈등을 고찰한 것이다. 연구 시기는 독일점령기에서 제2차 일본점령기가 끝나는 1945년까지와 노동집약적 제조업의 진출로 일본인 이주가 재개되는 1990년 이후이다. 연구방법은 역사자료, 문학작품, 선행연구에 대한 분석이며, 필요에 따라 인터뷰자료를 활용했다. 연구내용과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기별 접촉양상을 살펴보았다.
타자간 접촉은 정치관계, 산업구조, 인구구성, 거주양상에 따라 상이했다. 특히 191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는 인구증가와 계층분화로 생업 및 거주공간에서 다양한 접촉면이 형성되었다. 둘째,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과 표출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갈등은 주로 식민‧반식민 상황, 즉 정치군사적 비호를 통한 일제의 민족차별과
그것이 양산한 경제관계의 불평등에서 발생했다. 또 이것은 반일감정과 같은 민족관계나 노동쟁의와 같은 계급
관계로 표출되었다. 셋째, 1990년 이후의 일본인사회는 타자간 접촉을 최소화해 공적 기억으로 계승된 민족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접촉공간을 만들지 못했다. 아울러 최근 발생한 중‧일간 정치적 충돌이 이주민의 일상으로
침투하면서, 이 갈등은 공적 기억에서 사적 체험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식민지도시 다롄과 주민의 생활공간
(역사와 경계 98호, 2016.03.31)
본고는 일본 제국주의 통치 아래 고도의 식민지화가 진행된 1930년대 중반의 다롄을 중심으로, 도시 주민의 생활공간을 민족과 계층에 따라 유형화하고, 각 유형별로 생활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분석함으로써 식민지도시로서 다롄의 특징을 도출하고자 했다. 일본 식민당국은 다롄의 도시공간을 용도에 맞추어 구획, 활용함으로써 도시 기능을 극대화하고, 민족 분거에 유의함으로써 민족 간 마찰을 방지하는 동시에,
계층에 따라 주민의 거주지를 배치, 조정함으로써 식민지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민의 민족별, 계층별 구성에 따라 주거, 생업, 교육, 소비, 여가활동이 이루어지는 생활공간이 구획되고, 각 생활공간 사이의 불평등이 발생했다. 다롄의 중심업무지구, 산록부의 고급주택지구, 교외의 전원
주택지구는, 주거환경이 양호하고 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을 위한 시설이 가까이에 있으며 소비 및 휴식여가시설이 구비된 양질의 생활공간으로서, 다롄 사회의 상층을 점하던 일본인, 중국인, 구미 각국 출신자가 거주했다. 일본인사회의 중하층을 점하고 있던 노동자계층의 다수는 일정 정도의 생활 조건이 구비된 공장사택
구역이나 노동자주택구역에 거주했으며, 중층 정도의 생활수준을 갖추고 있던 중국인들은 샤오강쯔의 중국인구역에 집거했다. 한편 식민지 역학관계에서 가장 취약한 입장에 있었던 중국인 저소득노동자층과 빈민층은 노동자수용소나 도심 외곽의 빈민가 등 불평등이 가장 심화된 생활공간에 배치되었다. 이처럼 민족과 계층으로 구현되는 식민권력과의 관계에 따라 주민의 생활공간이 주어지고 생활 전반이 규정되는 것은 식민지도시로서 다롄이
가지고 있던 특성이었다.
근대 해항도시 안둥의 산업구조
(해항도시문화교섭학 16호, 2017.04.30)
본고는 안둥이 개항한 1906년부터 ‘만주국’에 편입되기 전까지를 중심으로, 안둥의 교통운수업, 무역, 공업의 기반과 내역,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 하 중국 북부 해항도시 간 비교연구의 기초로 삼고자 했다.
안둥의 산업기반은 배후지와 역외 지역을 잇는 도시의 결절적 성격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 산업구조면에서도 외부와의 관계성이 돌출되었다. 주요 산업인 교통운수업은 배후지 만주 및 압록 강 유역과 일본, 조선, 중국 연안 각지 등 역외 지역을 매개하는 여객화물 수송이 주를 이루었다. 상업무역에서는 배후지 생산 원료 및 그 가공품의 국내외 수이출과 공산품의 수이입 유통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주요 공업은 배후지 생산 원료의 가공과 수출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업종에 집중되어 있었다. 안둥의 산업화 과정 중에 진행된 일본의 산업기반 장악과 대규모 자본 투하는 산업구조의 일본 편중을 가속화했고, 나아가 배후지를 일본 제국주의의 원료 공급지이자 상품 시장이라는 종속적 경제구조 속으로 포섭하는 역할을 했다. 한반도와 접경한 안둥의 지리적 위치는 제국주의 본국, 식민지 조선, 만주라는 제국주의의 연속적이고 포괄적 확장을 기도하는 일본의 물리적, 제도적 조치와 맞물리면서 산업 부문에서 일본, 조선과의 관계 정도를 심화시켰다. 국경도시로서 안둥의 조건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권 내에서 다변적 관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된 동시에, 도시의 세력 범위를 인근 지역과 일본 세력권 내로 한정시킴으로써 제국주의 경제로의 종속을 심화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주제어: 안둥, 산업구조, 제국주의, 일본, 만주, 조선, 해항도시, 국경도시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칭다오를 통한 
산둥 노동자의 이동과 그 의의
(해항도시문화교섭학 17, 2017.10.31)
본고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칭다오와 교제철도 연선을 중심으로 진행된 연합국의 산둥 노동자 모집과 전시 노동자 송출에 따른 노동력 수급 문제를 일본 제국주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본론의 분석을 통해 다음의 세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첫째, 칭다오는 철도항만을 중심으로 한 교통 인프라와 지역 관민의 노동력 송출 경험, 일본 제국주의 점령 하의 국제관계를 바탕으로 전시 산둥 노동자의 모집 거점이 되었다. 둘째, 일본은 연합국의 산둥 노동자 모집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중국 내 자국 세력권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합국의 노동자 모집을 저지하려는 이중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는 중국에 대한 세력기반이 공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력 강화를 통해 자국 세력을 부식하는 동시에, 국제 협조를 통해 중국에 대한 지위와 ‘권익’을 인정받으려 했던 당시 일본의 위치를 보여준다. 셋째, 노동력 수급의 측면에서 전시 노동자의 송출은 일시적 현상이었으나, 만주 지방에서 노동력 수급 체계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중국 정부가 자국 노동자 송출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며, 산둥 노동자의 이동 범위가 조선과 일본 등지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근대 동북아해역 해항도시 기반 연구: 
랴오둥 반도 잉커우의 산업을 중심으로
(인문사회과학연구 19-2, 2018.05.31)
본고는 만주 최초의 근대 통상항이었던 잉커우의 산업 분석을 통해, 동북아해역 해항도시 물적 기반의 사례를 발굴하고, 당시 만주 경제에서 잉커우의 위치를 확인함으로써만주를 둘러싼 국제 관계의 변화를 고찰했다.
해당 시기 잉커우의 산업은 배후지인 만주 내륙과 중국 관내 및 일본 등 만주 역외 지역 사이의 여객물류 수송을 담당하는 교통운수업, 대두 등 만주산 원료의 가공을 주로 하는 공업, 만주산 원료와 그 가공품의 국내외 수출 및 역외 지역 상품의 수입 유통을 중심으로 하는 상업무역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다시 말해 잉커우의 산업은 배후지와 바다를 통해 연결되는 역외 지역이라는 외부의 존재를 근간으로 각 업종 간의 유기성을 견지하며 전개되었다.
잉커우 산업의 기반이 된 외부와의 관계는 산업의 발전과 쇠퇴를 추동하는 양면성을지니고 있었다. 잉커우의 산업은 개항 이후 오랜 기간 중국 관내와의 교역을 중심으로 진행되다가, 청일전쟁 이후 일본과의 교역을 통해 세계 시장과 관계를 맺으며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다롄과 단둥에 거점을 두고 이들 도시를 중심으로 만주 내 세력 확장을 꾀하면서, 만주 경제 전반에 대한 잉커우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역외 지역과의 교역은 중국 관내로 제한되었다. 이와 같은 잉커우 산업의 성쇠는 중국과 영국ㆍ러시아ㆍ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과의 길항 관계, 특히 20세기 전반의 잉커우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세력과 다롄ㆍ단둥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세력 간의 경쟁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만주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 팽창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 동북아해역의 해항도시와 노동자
(해항도시문화교섭학 19호, 2018.10.31)
본고는 1920년대∼1930년대 전반 다롄, 잉커우, 안둥의 노동자 구성과 노동 양상을 분석하여, 중국 동북지방 사회경제의 일면을 고찰한 것이다. 세 개 도시의 노동자 구성과 노동 양상은 랴오둥 반도 해항도시로서의 유사성과 함께, 각 도시별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노동자의 민족별 구성에서는 세 개 도시 모두 중국인 노동자가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다롄에서는 일본인 노동자, 안둥에서는 일본인 노동자와 조선인 노동자의 규모가 두드러지는 등, 도시의 지리적 정치경제적 요인에 따른 차이가 존재했다. 노동자의 업종별 구성에서는 교통운수업과 공업 종사자가 다수를 차지했으나, 종사 세목에서는 도시별로 차이가 있었다. 중국인 노동자의 다수는 산둥 성과 허베이 성 출신자로서 계절성 이동의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부두나 철도 하역과 같이 대규모 노동력을 상시적으로 사용하던 사업장에서는 중국인 노동자 조직 방(幇)과 그 대표인 파두(把頭)에게 작업과 노무 관리를 맡김으로써 유동성이 큰 노동자의 안정적 확보와 관리를 기도했다. 요컨대 랴오둥반도 해항도시의 노동자 구성과 노동 양상은 해당 시기 중국 동북지방 황해 연안 도시들과 중국 관내, 조선, 일본 등 역외 지역의 상호관계 및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권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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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및 번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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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 식민도시에서 초국적 도시로
(구지영, 권경선, 최낙민 편저, 선인, 2014)
이 연구는 경제관계가 심화되는 만큼 국가 간 대립이 첨예해지고 있는 오늘날, 해항도시를 방법으로 그 공존과
갈등의 역사적 근원을 규명하는 동시에, 타자간 관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책은 그 출발점으로 19세기 후반 역사무대에 등장해 지금까지 관계의 결절점에 자리한 중국 칭다오(靑島)를 선정하였다. 중심이 되는 시기는 칭다오를 거점으로 이동과 교섭이 활발했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까지와 개혁개방 이후이다. 상이한 메커니즘으로 작동되는 시대를 동시에 고찰하여 드러나는 지속과 변화를 통해, 교섭의 측면에서 동북아시아 해항도시의 가능성과 한계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해항도시 I : 아시아편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지음, 선인, 2014)
* ‘해항도시’라는 귀에 익지 않은 키워드를 가지고 대학생과 교양대중을 만나고자 집필된 『세계의 해항도시 I (아시아편)』의 야망은 크다. 해항도시라는 명칭은 따로 특별한 이름이 없는 그냥 도시이거나 항구, 항만, 해양이 형용사적으로 사용되는 도시를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기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이 책은 국가라는 틀 내에서 그 구성요소로 자동 인식되거나 항구라는 한정된 지각 속에 존재하는 공간에 해항도시라는 이름을 줌으로써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모습과 의미를 찾아내고 경험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독자의 앎의 지평은 넓어지고 삶의 양상도 달라질 것이며 21세기의 새로운 전망의 서광을 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 의심스러울 수도 있는 이러한 확신과 해항도시 내외에서 작동하는 놀라운 메커니즘의 실제 존재 여부와 그 작동 방식은 구체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다.
* 이 책은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온 해항도시의 본래적인 모습과 의미를 우리 모두가 함께 찾아내고 새로운 세계를 전망하고자 기획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의『세계의 해항도시』교양총서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 제1권은 먼저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를 포괄하는 아시아의 해항도시를 탐험한다. 이 책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14개의 해항도시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해항도시인 부산, 인천, 상하이, 광저우, 칭다오, 홍콩, 나가사키, 오사카, 요코하마, 고베, 호치민시, 믈라카, 싱가포르 그리고 자카르타이다.
- 이들 해항도시는 영토국의 문화는 물론 ‘진짜 아시아(Truly Asia)'를 내부에 품고 있으며 해항도시에만 있는 특수한 촉수를 통해 다른 아시아의 해항도시들, 그리고 세계로 연결되어 있는 문화의 고속도로이다.
* 14개의 각 장은 각기 다른 아시아의 해항도시를 다루고 있지만 각 장을 이루는 절을 통해 아시아 해항도시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드러내도록 고안했다. 장의 절은 통상 3개로 이루어져 있다.
- 각 장의 1절에서는 해당 해항도시의 역사적 형성과정에 초점을 두어 해당 해항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 각 장의 2절에서는 해당 해항도시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줄 수 있으며 저자들이 가장 전문으로 하고 있는 분야와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내용이 전개된다.
- 마지막 3절에서는 해당 해당도시가 가지고 있는 현재적 위상, 누구나 거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문화교섭의 양상이 표현된 해항도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나 기념물, 그리고 여타 해항도시 특히 한국의 해항도시와 갖는 관계를 중심적으로 기술했다.
다롄, 환황해권 해항도시 100여 년의 궤적
(권경선, 구지영 편저, 선인, 2016)
이 책은 해항도시 다롄이 역사 속에 등장한 19세기 말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100여 년 동안,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패러다임의 변화 속 한중일의 인적·물적 이동과 그것이 추동하는 사회 변용을 다롄과 그 배후지를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다롄은 일본 제국주의의 거점도시, 냉전 시기 중소 사회주의 세력의 집결지, 중국 대외개방 이후 한중일 경제협력의 장이라는 근현대 동북아시아 관계가 집적된 해항도시이다. 다롄과 그 배후지에서 전개된 한중일 간 인적·물적 이동과 사회 변용의 역사를 해명함으로써, 협력과 반목이 뒤섞여 있는 현재 동북아시아 관계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고 문제 해결과 전망을 위한 실마리를 포착하고자 했다.
단절과 이음의 해항도시 단둥
(권경선, 최낙민 편저, 선인, 2018)
중국과 북한의 국경에 위치한 단둥은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국제 관계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가운데 변화의 움직임을 가장 기민하게 포착할 수 있는 지점이다. 단둥은 국가 간의 결절이자 내륙과 해외를 잇는 해륙의 결절로서, 이(異) 세력 간의 실제적인 접촉, 갈등, 교류가 진행된 장소이다. 이 책은 단둥을 비롯하여 신의주, 투먼 등 근현대 동북아시아 관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온 국경의 해항도시들을 통해, 부단한 단절과 이음의 과정 속에 만들어진 현재 동북아시아 관계의 형성 맥락을 확인하고, 다양한 세력들이 접촉하고 길항하는 긴장 관계의 한편에서 화해와 공생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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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세계해양문화연구소협의회 국제학술대회 발표(2013.4.25-26)
*발표제목: A Study on Factory Works in Qingdao in the 1910s-1920s: With a Focus on Cotton Textile Industry
*주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장소: 한국해양대학교
*초록
This study aims to identify sociocultural impacts on seaports and hinterland areas by analyzing the conditions and characteristics of cotton industry workers in modern Qingdao and exploring various mechanisms of sociocultural concepts and customs of Shandong and Japanese capital and system in Qingdao, a seaport.
This study will focus on places of origin and gender ratios of workers in the process of unfolding of modern cotton industry in Qingdao. The ratio of female workers was extremely low and Japanese cotton manufacturers worked hard to recruit and develop female workers from Manchu in Shandong. This study will clarify the characteristics of such labor structure and identify the difference of conditions to develop workers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of Qingdao as an emerging city and sociocultural aspects of Shandong as the origin of workers.
In the main discussion, the backgrounds of industrial development in Qingdao and the process of cotton industry development will be briefly covered and the characteristics of labor structure and the causes will be analzyed.

제56회 전국역사학대회 발표
(2013.10.25-26)
*발표제목: 제1차 세계대전 중 靑島에서의 유럽행 華工 모집과 그 동향
*주최: 한국서양사학회
*장소: 부산대학교
*초록
본 연구는 제1차 세계대전(이하 1차 대전)시기 연합국의 중국인 노동자, 즉 화공 모집을 당시 일본 점령 하에 있던 山東省 靑島와 膠濟鐵道 연선에 주목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차 대전 당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연합국은 전쟁의 심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화공 모집에 노력했다. 1916년 이래 러시아는 중국 동북3성과 山東, 直隷를 중심으로 약 3만 명의 화공을 모집하였고, 영국과 프랑스는 山東, 直隷, 江蘇 등 중국 연해지역을 중심으로 약 15만 명의 화공을 모집하였다. 그 가운데 영국은 화공 모집 당초부터 山東에 주목하여 연합국 중 가장 많은 약 10만 명의 화공을 모집했다. 영국의 山東 화공 모집과 관련해서는 모집 본부가 있었던 威海衛에서의 활동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으나, 모집 과정 및 규모 면에서 靑島와 膠濟鐵道(山東鐵道) 연선 역시 간과할 수 없다. 1차 대전 당시 威海衛를 통해 유럽으로 수송된 화공은 약 54,000명으로 그 가운데는 膠濟鐵道 연선에서 모집되어 靑島를 통해 다시 威海衛로 유입된 인원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관련 자료에 따르면 靑島에서 威海衛나 홍콩을 거쳐 다시 유럽으로 수송된 화공과 靑島에서 직접 유럽으로 수송된 화공은 약 6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영국이 모집한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나 프랑스와 러시아도 靑島와 膠濟鐵道 연선 일대에서 모집활동을 실시하여 일정 정도의 성과를 올렸다. 연합국이 이처럼 화공 모집지로 山東을 주목하고 靑島와 膠濟鐵道 연선에서의 모집을 실시한 것은 당시 중국의 국내외 관계, 山東의 상황, 일본의 靑島 및 膠濟鐵道 연선 점령과 그를 둘러싼 관계, 靑島의 교통조건 등 다양한 요인에서 기인한다. 본 연구는 특히 당시 일본이 靑島와 膠濟鐵道 연선을 점령한 상태에서 연합국의 화공 모집을 다방면으로 도왔던 점에 주목함으로써 중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된 기존 논의에 일본을 더하여 화공 문제를 비롯한 당시 국제관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한편, 동북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인구 이동의 일면을 바라보는 사례로 삼고자 한다.
동아시아공생프로젝트 국제학술대회 발표
(2013.12.14-15)
*발표제목: 近代山東人の域外移動と海港都市――日本占領期(1914-1922)の青島を中心に
*주최: 일본 나가사키대학
*장소: 일본 나가사키대학
*초록
本報告は日本占領期の青島を通じた山東人の域外移動を中心に、当時東北アジアでの日本勢力の拡大と人々の移動との関係の一面を考察するものである。
清朝時代に入り、経済的な理由で山東省の外部地域、主に中国東北地方に移動する山東人の数は増加していた。19世紀後半からはその移動範囲は中国東北地方、シベリア、ウラジオストック、朝鮮半島、日本およびその他の国と地域にまで拡大し、第一次世界大戦期には大規模の人員が連合国(協約国)側の華工募集に応じてヨーロッパに移動した。当時山東人の域外移動は陸路を利用する場合もあったが、多くは煙台、竜口、青島などの海港都市を通じた海路移動であった。山東半島北部は清朝が東北地方の封禁政策を実施していた時期にも住民の東北地方への移動が見られた地域であり、この地域を後背地にしていた煙台、竜口は北部に向う山東人の主要な送出港であった。特に19世紀半ばに山東省唯一の通商港として開港した煙台は20世紀前半まで山東人の域外移動の最大送出港として役割を果たした。山東半島南部の青島は煙台と比べて遅く登場したものの、都市の建設、鉄道•港湾など交通インフラと交通網が整えられるとともに、山東省全域を後背地として包摂し、各地住民の域外移動の中継地として急速に成長した。
 山東人の域外移動の中継地として青島が成長したのはドイツが膠州湾を占領、租借し、都市を建設してからである。都市の建設、膠済鉄道の敷設、青島港の築港などにより青島は山東省内陸と域外地域をつなぐ結節点となり、山東人の域外移動の物理的基盤が整えられた。それとともに青島を占領したドイツと日本は都市繁栄策として青島を通じた山東人の域外移動を促進する方案を講じた。特に日本は山東人が域外地域で稼いだ収入で山東省の購買財源を拡充し、青島の貿易、特に自国との貿易を発展させる狙いを持っていた。こうした状況の下、慢性的な労働力過剰、伝統経済構造の転換、災害などのさまざまな理由で外部での生計手段を模索していた多くの山東人が青島を通じて域外地域に移動した。
 第一次世界大戦が勃発し、日本がドイツとの交戦で勝利して青島および膠済鉄道沿線を占領した時期(1914~1922)には青島から域外地域に移動する山東人の規模と移動の範囲はさらに拡大した。その規模は煙台を超えることもあり、また移動範囲はヨーロッパにまで拡大した。
近代中国東北地方は必要労働力の多くを山東省から供給していた。日露戦争後、大連をはじめ、いわゆる‘南満州’を勢力下に置いた日本は、1914年青島と山東省に勢力を持つことになってから青島を中心に山東省からの労働力需給に力を注いだ。この時期は大戦景気により東北地方でも鉱山、鉄鋼業をはじめ、産業界全体で労働力の需要がより高まっていた。こうしたなか、満鉄の撫順炭鉱は煙台に設置した労働者募集所を閉鎖し、占領地の青島に募集所を設置して労働者の募集を図った。また出稼ぎ労働者の移動期間には膠済鉄道―大連汽船―満鉄の三線連絡運賃を行い、大規模な労働者の移動を促した。
一方この時期には大戦の連合国側、特にイギリスの華工募集に応じ、多くの山東人がヨーロッパに渡航した。日英同盟を理由に参戦し、青島を占領した日本は連合国側の山東省での華工募集に協力した。日本青島守備軍、陸軍省、外務省は、特にイギリスの膠済鉄道沿線での華工募集、青島への輸送と収容、ヨーロッパへの輸送および帰還を支援しながら華工募集に協力し、当時約6万名の山東人が青島を通じヨーロッパに移動したと見られる。
 日本占領期の青島を通じた山東人の域外移動は、東北アジアでの日本勢力の拡張、当時国際関係のなかで日本の対処などと深く関わっていた。当時山東人の域外移動は山東省、東北地方での労働力不足問題を引き起こすとともに、中国政府の華工関連の措置による山東人の東北地方、朝鮮半島などへの移動に影響を及ぼし、また各地での日本(人)の事業にも影響を及ぼすことになった。
제4회 세계해양문화연구소협의회 국제학술대회 발표(2014.4.25-26)
*발표제목: The Migration of Chinese Laborers from Huabei to Dongbei during Modern times
*주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장소: 한국해양대학교
*초록
This study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connections between the migration of Chinese workers from the Huabei region to Dongbei and the supply and demand of labor in Dalian and its hinterland in the former half of the 1930s. The population inflow into the Dongbei region from other areas from the latter half of the 1920s to the former half of the 1930s amounted to 400,000~1,000,000 annually. Accounting for a majority of the population inflow, the Chinese people from Huabei flew into various parts of Dongbei via the seaport cities of the Shandong and Liaodong Peninsulas from the rural areas of Shandong Province. In the process, Dalian served as a major entrance for migration and absorber of labor. While some of the Chinese people that moved to Dongbei during the period sought after immigration for permanent residency there, many had an aim at short-term labor. The labor composition of Dalian and its hinterland reflected such influx patterns of Chinese people from Huabei. With the Chinese people from Huabei accounting for a majority of the entire industrial workforce, coal-mining areas and wharfs in need of massive labor had to absorb a big percentage of needed labor from other regions such as Huabei and thus took pains to meet the supply and demand of labor. The labor organization formed around the Batou system and the labor recruitment around Huabei and its regional relations during those days demonstrate the importance of the Chinese people from Huabei in the industry of the region and the relations between Huabei, the supplier of labor, and Dongbei, the consumer of labor.
2014 동아시아 해항도시 국제학술회의 발표
(2014.11.27-28)
*발표제목: 근대 이민도시 대련의 주민 구성과 그 특징-청도와의 비교연구
*주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장소: 한국해양대학교
*초록
Dalian and Qingdao, seaport cities in northern China, witnessed the massive inflow of Korean and Japanese corporations and people since the 1990s with the progress of economic exchanges in Northeast Asia in the background. As one can see in the influences of anti-Japanese demonstrations triggered by the recent territory disputes in Dalian and Qingdao on the local Japanese communities, there were direct connections between the macroscopic domains and the daily aspects of local society and patterns of conflicts between the Chinese society and the immigrant communities including the Japanese, as well, in early modern days, when Dalian and Qingdao were new and colonial cities built through the invasion of imperial powers. Dalian and Qingdao, which were built in the late 19th century by Russia and Germany, respectively, became the strategic points for invasion into China under Japanese rule through Russo-Japanese War and the First World War. Such nature and historicity of the two cities were reflected in the composition of their citizens.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the nature of the Dalian community through the composition of its citizens in the former half of the 20th century, compare it with Qingdao, find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m, and establish a foundation for considering diachronic continuity among the seaport cities in Northeast Asia
2015년도 한국아시아학회·국제지역연구학회 공동학술대회(2015.12.11)
*학술대회 정보
2015년도 한국아시아학회·국제지역연구학회 공동학술대회
주제:해외지역연구의 새로운 경향과 이슈
일시: 2015년 12월 11일 (금요일)
장소: 부산외국어대학교 트리니티홀 (D동 109호)
주최: 한국아시아학회, 국제지역연구학회
주관: 부산외대 동남아지역원·지중해지역원·중남미지역원, 해양대 국제해양문제연구소, 부경대 국제지역연구소
후원: 부산외대, 한국연구재단

*발표 정보
발표 세션: <제4분과> 해항도시에서의 사람의 이동과 문화의 혼종 1
발표 제목: 근대 다롄의 도시 건설과 이주민 생활공간

초록: 본 발표는 중일전쟁을 목전에 둔 1935년의 대련을 중심으로 주민 거주지의 민족계층 분화를 고려하여 생활공간을 구획하고, 주거·생업·교육·휴식여가라는 생활의 기본적인 조건을 중심으로 각 생활공간 사이의 불평등을 고찰했다. 대련의 생활공간은 일본인구역으로서 구 대련의 상업 및 혼합구역, 높은 지대에 자리 잡은 고급주택가, 노동자주택구역, 교외의 전원주택구역과, 중국인구역으로서 상공업과 주택기능이 혼합된 소강자, 외부와 분리된 중국인노동자수용소, 도심 변두리의 저소득층 자연취락으로 나눌 수 있었다. 각 생활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생활 조건의 불평등은 크게 민족을 기준으로 나누어지지만, 동일 민족 내에서도 계층에 따라 달라졌다. 민족과 계층이 맞물리며 작동하는 식민지 역학관계에서 가장 취약한 입장에 있던 중국인노동자계층과 빈민층은 불평등이 가장 심화된 생활공간에 배치되었다. 이처럼 식민권력과의 관계와 그 원근(遠近)에 따라 생활공간이 주어지고 주민의 생활이 규정되는 것은 당시 식민지도시로서 대련이 가지고 있던 특성이었다.
7th IMEHA International Congress of Maritime History;
 제6회 세계해양문화연구소협의회 국제학술대회
(2016.06.27)
일시: 2016.06.27  /  장소: Murdoch University, Perth, Australia
발표제목: Contacts and Conflicts across the Ocean: The Cycle of Labour Migration within the Japanese Empire
해양인문학 학술대회(2017.02.07)
일시: 2017.02.07  /  장소: 부경대학교
발표제목: 근대 단둥의 산업 구조와 노동자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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